K-민화 강경희 기자 | 죽필과 혁필 또한 K-그라피의 본질적 영역이다. 대나무를 깎아 결기로 찍는 죽필은 수행과 절제의 미학을 담고, 가죽 붓으로 속도와 리듬을 살리는 혁필은 소통과 확장의 언어가 된다. 이 두 붓은 한국적 필법의 깊이와 역동성을 함께 보여주며 K-그라피를 전통에서 세계로 이끄는 양대 축을 이룬다. 전통 서예의 세계에는 서로 닮았으나 전혀 다른 두 갈래의 붓이 있다. 하나는 죽필竹筆이고, 다른 하나는 혁필革筆이다. 둘 다 ‘붓’이라 불리지만, 이 두 도구는 쓰는 방식도, 담아내는 정신도, 향하는 방향도 다르다. 죽필과 혁필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곧 전통 예술이 어떻게 수행의 길과 소통의 길로 나뉘어 발전해 왔는지를 읽는 일이다. 죽필, 마음을 찍는 도구, 죽필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다. 털이 없고, 먹을 머금지도 않는다. 그래서 죽필의 획은 부드럽지 않다. 오히려 거칠고 단호하며, 한 번 그으면 되돌릴 수 없다. 이 도구 앞에서는 망설임이 곧 실패가 된다. 죽필 서예는 기술보다 태도를 요구한다. 손의 떨림은 곧 마음의 흔들림이고, 획의 기울기는 곧 정신의 방향이다. 그래서 죽필은 오랫동안 선승과 수행자들의 도구였다. 글씨를 쓰기 위해 붓을
K-민화 강경희 기자 | 대한민국 초고령 103세 혁필 연구가 남상준 선생은 1965년부터 1984년까지 중국·일본 문자와 영어 알파벳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혁필화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며 예술적 기틀을 다졌습니다. 1977년 이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혁필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쌓았습니다. 2000년대에는 일본 오사카를 비롯한 전국 백화점과 축제에서 순회 전시 및 시연을 통해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고, 국내외 교민들을 대상으로 혁필을 가르치며 전통 계승에 힘써 왔습니다. 또한 서울특별시 전통문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교육과 전시를 이어왔으며, 2023년에는 서울공예박물관 등에서 초청 교육을 진행해 혁필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전통예술을 대중과 다음 세대에 전해온 그의 행보는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교육 공간 및 운영 안내 이번에 세계평화미술대전 조직위원회는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 12층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남상준 명인에게 무상 개방합니다. 수강생 모집: 수시 모집 수업 일정: 월·화·금·토요일 오후 2시~5시 장소: 종각역 1번
K-민화 강경희 기자 | 2026년 병오년 새해 첫날인 1월 1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 전관에서 열린 2026 세화歲畫 특별전 「어서 오세요, 벽사초복僻邪招福·服」이 내외 귀빈과 관람객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K-민화와 K-민화한복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세화전으로, 전통 회화가 ‘보는 예술’을 넘어 ‘입고 걷는 예술’로 확장되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조낭경 대표가 이끄는 고은자락의 K-민화한복이 있었다. 조 대표는 민화 속 호랑이, 사자, 길상문, 복福의 상징들을 한복의 선과 색으로 재해석해 무대 위에 올렸다. 전시장은 K-민화 작품 전시를 중심으로 ▲k-민화한복 패션쇼 ▲세화 특별전 시상식 ▲대한민국 명인 인증서 수여 ▲‘한국을 빛낸 예술인 100인 대상’ 시상 ▲문화 퍼포먼스로 이어지며, K-민화 종합 문화축제로 구성됐다. 이는 민화를 단순한 전통 회화 장르가 아닌, 패션·라이프스타일·공공외교를 아우르는 살아 있는 문화 언어로 확장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조낭경 대표는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는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세화의 의미를 한복에 담아 삶의 현장으로 끌어낸 자리”라며 “
K-민화 강경희 기자 | ‘대부귀 모란도’는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기에, 자칫하면 화려함은 욕망으로 오해되고, 장식은 의미를 가릴 수 있다. 그러나 김정연의 ‘대부귀 모란도’는 이 오래된 위험을 정면으로 통과한다. 이 작품의 부귀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로 드러난다. 화면을 가득 채운 모란은 크고 풍성하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다. 색은 부드럽게 겹치고, 꽃잎 하나하나는 절제된 호흡으로 피어난다. 이는 ‘많음’을 자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충분함을 누리는 태도에 가깝다. 김정연의 모란은 보여주기 위해 피지 않는다. 스스로의 시간을 다 채웠기에 피어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화면 하단의 괴석이다. 민화에서 괴석은 자연의 기운이 응축된 상징이다. 이 작품에서 괴석은 단순한 받침이 아니라, 부귀를 떠받치는 근원으로 자리한다. 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세계, 뿌리와 돌, 시간과 무게가 함께 있어야 가능한 풍요를 말없이 증언한다. 화려한 꽃과 묵직한 괴석의 대비는 이 작품을 장식화가 아닌 사유의 화면으로 끌어올린다. 대한민국명인연합회 초청 개인전이라는 자리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명인이란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상징을 다루는 태도의 성숙으로 증명된다. 김
K-민화 강경희 기자 | 민화의 호랑이는 늘 무섭지 않다. 아니, 오히려 웃음을 머금고 있다. 김정미 작가의 ‘까치와 호랑이’ 앞에 서면, 우리는 그 오래된 웃음의 이유를 다시 묻게 된다.이 호랑이는 포효하지 않는다. 몸집은 크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눈은 번뜩이되 잔혹하지 않다. 과장된 이빨과 둥근 눈, 다소 엉성해 보이는 자세는 권력의 허세를 슬며시 비튼다. 반면, 소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는 작지만 또렷하다. 작가는 이 대비를 통해 민화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힘은 크기에서 나오지 않고, 진실은 소리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까치는 전통적으로 길한 소식을 전하는 존재다. 그러나 민화 속 까치는 단순한 길조가 아니다. 때로는 세상의 부조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자다. 김정미의 까치는 호랑이를 내려다보며 울지도, 아부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실을 전할 뿐이다. 권력이 듣기 싫어하는 진실을, 가볍고 명료하게.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권력의 상징이자 인간의 욕망을 닮은 얼굴이다. 강해 보이려 애쓰지만, 결국 민중의 시선 앞에서는 웃음의 대상이 된다. 이는 조선 민화가 지녔던 해학의 정치학이다. 칼 대신 웃음으로, 분노 대신 풍자로 세상을 교정하는 방식. 김
K-민화 강경희 기자 | 정선영의 ‘홍말연’ 속 말은 물 위를 건너며, 연꽃 사이를 가르듯 나아간다. 이 장면은 현실의 속도가 아니라 의지의 방향을 묻는다.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가는가를... 연꽃은 진흙에서 피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존재다. 그 연꽃들 사이로 붉은 말이 지나간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붉음은 열정과 생명의 색이자, 새해와 길상의 기운을 상징한다. 말은 이동과 결단의 상징이다. 이 둘이 만나 만들어내는 서사는 단순한 도상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정선영은 속도를 줄이고 의미를 세운다. 말의 갈기는 바람을 타되 난폭하지 않다. 근육은 팽팽하지만 과시적이지 않다. 이는 힘의 미학이 아니라 절제된 추진력이다. 오늘의 사회는 더 빠르게 달릴 것을 요구하지만, 이 그림은 더 바르게 건널 것을 권한다. 물 위를 건너는 말은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결단을 상징한다. 연잎의 겹침과 꽃의 개화는 화면에 리듬을 부여한다. 서로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구성은 공존의 윤리를 드러낸다. 이는 민화가 오래도록 품어온 세계관—경쟁보다 조화, 독주보다 균형의 현재형이다. 붉은 말은 선두에 서 있지만, 군림하지 않는다. 길을
K-민화 강경희 기자 | 연꽃은 늘 물 위에 떠 있지만, 그 뿌리는 가장 깊은 진흙 속에 닿아 있다. 그래서 연꽃은 아름답다. 깨끗해서가 아니라, 더러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때문에. 정선영 작가의 연화도는 바로 그 연꽃의 본질을 고요한 화면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요란한 상징도, 과장된 색채도 없다. 대신 물의 흐름, 잎의 겹침, 꽃의 열림이 차분한 리듬으로 이어지며 한 폭의 사유 공간을 만들어낸다. 화면을 가득 채운 연잎은 서로 겹치고 기대며 군락을 이룬다. 그러나 그 안에는 혼란이 없다.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있으면서도 전체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 이는 연화도가 전통적으로 품어온 공존과 조화의 세계관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번역한 결과다. 연못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와 하늘을 가르는 새들은 정적인 풍경 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 움직임은 급하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삶은 반드시 빨라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조용한 가르침이 그 안에 스며 있다. 정선영의 연꽃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꽃잎은 겹겹이 열리되, 항상 중심을 향해 모인다. 이는 곧 이 작품이 말하는 핵심이다. 중심을 잃지 않는 삶, 흔들리는 세상 속에
K-민화 강경희 기자 | 조혜선 작가의 ‘왕물도’는 전통 책거리·기명절지의 계보 위에 서서, 지식·권위·우주 질서를 한 화면에 집약한 대작이다. 화면 중심의 장엄한 붉은 장은 왕좌를 연상시키며, 그 위와 아래로 배치된 수많은 기물과 문방구, 보물들은 단순한 수집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와 인간 문명의 축적을 상징한다. 상단의 천문도는 인간의 앎이 하늘의 질서와 맞닿아 있음을 암시하고, 봉황·용·화훼는 태평과 덕치의 세계관을 보완한다.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일상과 예술, 학문과 생활의 기물이 공존하며, 이는 왕의 세계와 백성의 삶이 단절되지 않았던 이상적 질서를 상기시킨다. 조밀하면서도 균형 잡힌 구성은 전통 민화의 장식성과 현대 회화의 서사성을 동시에 성취한다. 그러나 그 말은 소유의 과시가 아니라, 가치의 선언이었다. 조혜선 작가의 왕물도는 이 오래된 민화의 진실을 오늘의 언어로 되돌려놓는다. ‘왕물도’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그림에 등장하는 기물들은 왕의 소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권력을 장식하는 물건이 아니라 권력조차 따라야 할 기준들이다. 학문을 상징하는 책과 문방구, 시간을 가늠하는 도구, 제의와 의례의 기물, 그리고 예
K-민화 이존영 기자 | 이신종 작가의 봉황도는 전통 민화의 상서祥瑞 도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고귀한 상징을 현대의 시선으로 다시 세운 작품이다. 봉황은 예로부터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영조靈鳥로 여겨졌고, 왕권의 덕과 나라의 안정을 상징해 왔다. 이 작품은 그 상징을 단순한 재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늘의 시대에 필요한 질서와 품격, 그리고 희망의 방향성으로 확장한다. 화면 중앙에서 날개를 펼치는 봉황은 정적인 권위가 아니라 막 비상하는 생명의 순간을 담고 있다. 오색으로 겹쳐진 깃털은 음양오행의 조화를 떠올리게 하며, 붉은 태양과 유려한 구름은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는 찰나를 포착한다. 봉황의 시선과 몸짓은 아래를 굽어보되 위엄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을 살피는 덕의 자세를 유지한다. 봉황 아래로 배치된 새 무리는 질서 속의 공존을 상징한다. 크고 작은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구성은, 전통 민화가 지녀온 공동체적 세계관을 또렷이 드러낸다. 이는 힘의 과시가 아닌 조화의 미학이며, 지배가 아닌 포용의 질서다. 색채 또한 주목할 만하다. 따뜻한 황토빛 바탕 위에 녹색 산세와 붉은 태양이 대비를 이루며, 화면 전체에 안정된 리듬을
K-민화 강경희 기자 | 박지영 작가의 “금빛 일월오봉도”는 전통 궁중회화인 일월오봉도의 상징 체계를 바탕으로, 빛과 질서, 그리고 영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금빛의 기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권위와 생명의 순환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붉은 해와 황금빛 달은 음양의 조화이자 우주의 균형을 상징하며, 중앙에 솟아오른 다섯 봉우리는 나라와 공동체, 인간의 삶을 떠받치는 불변의 중심축을 이룬다. 좌우로 배치된 소나무는 장수와 절개를, 끊임없이 흐르는 물결과 폭포는 생명의 순환과 쉼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특히 작가는 전통 일월오봉도의 엄정한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색채와 질감에서 현대적 감각을 더해 고요하지만 압도적인 공간감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오늘의 시대에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떤 질서 위에 서 있는가.” 빛으로 세운 질서 박지영의 금빛 일월오봉도 가 말하는 중심의 의미 일월오봉도는 왕의 뒤에 놓이던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본질은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선언이었다. 해와 달이 떠 있고, 산은 흔들리지 않으며, 물은 멈추지 않는다. 그 위에 인간의 삶이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