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총사 칼럼] 김나은 작가의 “모든 것은 때가 있다.”

- 비틀리고 흔들리며, 때로는 낮게 가라앉는다.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흘러가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단정한 진술이다. 소예 김나은 작가의 이 작품은 조언이나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작품을 펼쳐 보인다.

 

 

검은 먹은 한 번에 멈추지 않는다. 굵고 무거운 획은 잠시 머물다 흐르고, 번짐은 의도하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 또 다른 시간의 결을 만든다. 화면 위에 점처럼 흩어진 먹의 얼룩은 멈춤이 아니라 속도를 늦춘 흐름이다. 인생이 늘 직선으로만 나아가지 않듯, 이 작품의 획 또한 곧고 단정하지 않다. 비틀리고 흔들리며, 때로는 낮게 가라앉는다.

 

상단의 형상은 인간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숙이거나, 짚거나, 건너는 몸짓. 그것은 도착의 순간이 아니라 건너가는 과정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그 장면을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곡선의 획을 통해 말한다. 삶은 한 지점에서 완성되지 않으며, 의미는 도착이 아니라 흘러가는 태도에서 생겨난다고...

 

K-그라피의 언어로 보자면, 이 작품에서 글씨는 문장을 전달하는 기능을 이미 넘어섰다. 획은 말이 되기 이전의 호흡이고, 먹은 감정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다. 읽히는 문장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흘러가도 괜찮다는 감각이다.

 

김나은 작가의 작품은 묻는다.
왜 우리는 늘 ‘지금이 맞는 때인가’를 확인하려 하는가.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때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며 익혀지는 것이라고...

 

 

작가 노트 | 소예 김나은 명인
이 작업을 하며 저는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때 오지 않아 불안해지고,
제때 지나가지 않아 아파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먹을 흘려 보내듯,
삶도 그렇게 흘려보낼 수 있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획은 완성하려고 그은 것이 아닙니다.
멈추지 않기 위해,
머물지 않기 위해
그저 흐르게 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은 채
흘러가며 살아가면
그 또한 삶의 한 모습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