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총사 칼럼] 박경애 작가의 “박노해 ‘숨비소리’를 쓰다.”

- 숨을 건너, 다시 삶으로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숨비소리」는 버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들어가야 할 곳을 정확히 가리킨다. “휘, 숨소리 토하며 반드시 살아나와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지침이다. 삶의 표면에서가 아니라, 인생의 심장부까지 최대한 깊이 들어가라는 요구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숨을 찾아 나와야 한다는 명령이다.

 

 

백경애 작가의 K-그라피는 이 詩의 긴장을 몸의 곡선과 호흡의 흔적으로 번역한다.   작품 하단에서 상단으로 치솟는 형상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인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수면을 향해 몸을 비틀어 올리는 생명의 궤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먹의 농담은 폐 깊숙이 밀려드는 물의 압력을 닮았으며, 번져가는 선들은 숨을 되찾기까지의 흔들림과 긴박한 리듬을 닮았다.

 

이 작품 속에서 잠수부는 단순히 가라앉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가장 깊은 곳으로 몸을 맡기며, 동시에 반드시 다시 떠오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인간의 상징으로 서 있다.

 

글씨는 단정하지 않다. 호흡이 고른 순간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순간에 쓰였다. K-그라피는 여기서 미학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 된다. 설명을 지운 자리에는 호흡만 남고, 장식 대신 체온이 남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름답다’기보다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 필사성 속에서 우리는 확신한다.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 다시 살아질 수 있다는 것을...

 

K-그라피 칼럼 | 심장부의 서체
K-그라피가 가장 강해지는 순간은, 글씨가 의미를 꾸밀 때가 아니라 숨을 대신할 때다. 백경애의 작업은 문장을 장식하지 않는다. 대신 문장이 요구한 깊이로 함께 내려간다. 이때 획은 기술이 아니라 잠수의 리듬이 되고, 여백은 공기가 희박해지는 공간이 된다.

 

시와 서체, 수묵의 결합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또 하나의 다짐이 놓인다. 반드시 살아나올 것. K-그라피는 이 다짐을 눈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장면은 읽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것이다.

 

 

작가 노트 | 백경애 명인
이 시를 쓰며
숨이 먼저 흔들렸습니다.

 

고요한 획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몸처럼,
폐가 타오르는 순간의
숨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글씨는 말이 아니라
호흡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장 깊이 들어가되,
반드시 다시 나오기 위해
오늘도 붓으로 숨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