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해인의 詩 ‘바닷가에서’는 바다를 풍경으로 삼은 시가 아니다. 이 시에서 바다는 신의 음성과 인간의 울음이 동시에 머무는 자리, 그리고 내려놓음과 끌어안음이 교차하는 영적 공간이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자연의 소음이 아니라, 통곡과 위로가 번갈아 울리는 존재의 언어다.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리듬을 수평과 깊이로 번역한다. 화면 하단에 번져가는 푸른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장을 받아내는 감정의 그릇이다. 먹으로 적힌 시어들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밀려왔다가, 어느 순간 숨을 고르듯 여백 속으로 물러난다. 이 여백은 말하지 않음의 공간이자, 기도가 멈추는 자리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글씨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파도가 모래 위에 말을 “엎질러놓듯”, 문장들은 화면 위에 흘러놓아진다. K-그라피의 획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그 거침 속에서 오히려 시의 진실성이 살아난다. 밀물과 썰물처럼, 이 작품은 붙잡으라 말하는 순간과 놓아버리라 말하는 순간을 함께 품는다.
결국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바다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바다 앞에 선 한 인간의 마음 상태를 그린다. 이 작품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끌어안고 있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가.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그 질문의 답은 이미, 우리 안에서 출렁이고 있다고.

작가노트 | 조미주 명인
이 시를 쓰며 바닷가에 오래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파도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말은 줄고, 호흡만 남았습니다.
글씨를 또렷하게 쓰기보다
파도에 잠기는 마음처럼
번지게 두고 싶었습니다.
어떤 문장은 밀물처럼 힘이 있었고,
어떤 문장은 썰물처럼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 작업은 잘 쓰는 글씨가 아니라
잘 내려놓는 글씨에 가까웠습니다.
쥐고 있던 힘을 풀어야
비로소 시의 숨결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바다는
언제나 우리를 꾸짖지 않고,
기다려줍니다.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
잠시 맨발로 서서
자기 마음의 파도 소리를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