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장미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상처의 이름이다. 이명순 작가의 K-그라피 작품 ‘노천명의 장미’는 그 상처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맘 속 붉은 장미를 우지직 끈 꺾어 보내 놓고”라는 시어처럼, 한 번의 결단과 파열로부터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붓은 쓰다듬지 않는다. 꺾고, 밀어내고, 비워낸다. 그 결과 화면에는 화려함보다 번뇌가 자라는 시간이 남는다.
검은 먹의 굵고 가는 결은 마음의 무게를 닮았다. 글자는 단정하지 않고, 균형을 일부러 흔든다. 이는 시가 말하는 내면의 균열과 “그날부터 내 안에선 번뇌가 자라다”를 시각화한 선택이다. 장미의 붉음은 장식이 아니라 통증의 색이며, 여백은 도피가 아니라 각성의 공간이다. 글과 그림이 분리되지 않는 K-그라피의 미학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시는 읽히는 동시에 보이고, 그림은 보이는 동시에 말한다.
작품의 후반부, “차라리 얼음같이 얼어 버리련다 / 하늘보다 나무모양 우뚝 서 버리련다 / 아니 / 낙엽처럼 섧게 날아가 버리련다”에 이르면, 선택지는 셋이다. 정지(얼음), 자립(나무), 소멸(낙엽). 이명순의 붓은 어느 하나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갈림길의 정직함을 화면에 남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위로보다 자기 응시에 가깝다. 위로가 필요하기 전, 먼저 자신을 마주하라는 제안이다.
K-그라피는 캘리그라피의 번역어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그것은 시적 사유가 붓의 동작으로 환원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노천명의 언어는 이명순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며, 그 재탄생은 해석이 아니라 체화다.
글자를 쓴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그렸다.

작가 노트 | 이명순 K-그라피 명인
장미는 늘 아름답다고 말해지지만,
나는 그 장미를 꺾는 순간의 마음을 쓰고 싶었다.
사랑도, 믿음도, 존중도
어느 날은 스스로 꺾어 보내야만
자기 안의 번뇌가 자라는 것을 본다.
이 작품에서 글자는 꾸미지 않았다.
흔들리는 마음만큼 흔들리게 두었고,
버티는 마음만큼 먹을 눌렀다.
얼음처럼 멈출 것인지,
나무처럼 설 것인지,
낙엽처럼 날아갈 것인지는
보는 이의 몫이다.
나는 다만
그 갈림길을 정직하게 남기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