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에서 귀수龜壽는 단순한 장수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대하는 태도이며, 삶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이한나 작가의 '모란귀수도'는 바로 그 태도를 한 화면에 단단히 쌓아 올린 작품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거북이 있다. 그러나 이 거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지탱한다. 그 등 위에 놓인 것은 책과 문방구, 상자와 도구들, 지식과 기술, 그리고 생활의 흔적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가 아니라, 오래 곁에 두고 익혀야 할 것들이다. 거북의 느린 걸음은 이 모든 것의 필요조건처럼 보인다. 모란은 화면 위에서 피어 있다. 화려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중심을 침범하지 않는다. 민화에서 모란은 부귀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서의 모란은 결과에 가깝다. 충분한 시간과 인내가 쌓인 뒤에야 허락되는 꽃. 그래서 모란은 서두르지 않는다. 문양과 질감은 치밀하다. 나무결, 직물의 반복, 기하학적 장식은 손의 시간을 증명한다. 이는 기술의 나열이 아니라 노동의 윤리다.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리지 않는 태도의 이한나 작가는 그 태도를 화면 전체의 구조로 삼는다. 이 작품의 흥미는 균형에 있다. 무거운 것은 아래에서 받치고, 가벼운 것은
K-민화 이존영 기자 | 민화의 장수는 언제나 엄숙하지 않았다. 오래 산다는 뜻은 무게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잃지 않는 일에 가까웠다. 황현진 작가의 '해학반도도'는 그 사실을 한 장의 풍경으로 풀어낸다. 반도蟠桃의 풍요와 학의 고결함, 파도의 반복과 구름의 유영이 모든 상서가 모였는데도 화면은 과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소가 먼저 온다. 복숭아나무는 바람을 타고 굽이치며, 학은 가지 위에 앉아 서로의 균형을 살핀다. 바다는 규칙적인 파문을 만들고, 구름은 그 위를 가볍게 건너간다. 여기에는 힘의 과시가 없다. 장수는 위에서 내려오는 축복이 아니라, 관계의 리듬에서 생겨난다는 민화의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학’이라는 제목은 정확하다. 웃음은 대상이 아니라 태도다. 반도는 크되 위압적이지 않고, 학은 고상하되 거리 두지 않는다. 파도는 세차되 질서를 잃지 않는다. 황현진은 상서의 요소들을 서로 밀치지 않게 배치해, 장수의 조건을 ‘공존’으로 제시한다. 오래 살려면, 먼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색은 부드럽고 선은 절제되어 있다. 이는 민화가 지닌 생활의 미학에서 과잉을 경계하고 반복을 신뢰하는 태도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 작품속의 여백은
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에서 화병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담는 그릇이며, 하루의 마음을 세워 두는 자리다. 공재완 작가의 '화병도'는 이 오래된 인식을 현대의 감각으로 단정하게 복원한다. 작품 속 모란은 흐드러지되 흐트러지지 않고, 화병은 화려하되 소란스럽지 않다. 모든 요소가 제자리를 알고 있는 듯한 안정감이 그림 전반을 감싼다. 모란은 말한다. 부귀와 영화는 과시가 아니라 지속의 결과라고. 겹겹의 꽃잎은 시간의 층위를 닮았고, 가지의 방향은 무질서가 아닌 리듬을 따른다. 공재완은 꽃의 크기를 키우기보다, 균형의 감각을 키운다. 그래서 이 화병도는 ‘보여 주는 그림’이 아니라 ‘곁에 두는 그림’이 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화병과 받침대의 처리다. 문양은 정교하되 절제되어 있고, 금색은 빛나되 앞서지 않는다. 이는 민화가 지닌 생활 미학의 집 안의 풍경과 마음의 질서를 함께 가꾸는 태도를 충실히 잇는다. 화병은 중심을 잡고, 꽃은 그 중심 위에서 호흡한다. 삶의 중심과 기쁨의 확장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다. 색채는 부드럽게 호흡하며, 여백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여유다. 보는 이는 해석을 강요받지 않고, 자연스레
K-민화 이성준 기자 | 송학도는 오래된 약속의 그림이다. 소나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알고, 학은 시간을 건너는 법을 안다. 백찬희 작가의 '송학도'는 이 두 존재를 나란히 세워, 장수의 기원을 넘어 함께 사는 태도를 묻는다. 작품 속 소나무는 요란하지 않다. 굵은 줄기와 촘촘한 솔잎은 바람을 과시하지 않고, 학은 날갯짓을 멈춘 채 가지 위에 서 있다. 이 정적은 멈춤이 아니라 지속이다. 민화가 말해온 이상은 언제나 여기 있었다. 크게 외치지 않고, 오래 남는 것. 견딤과 건넘의 균형 백찬희 작가의 '송학도'에서 소나무는 배경이 아니다. 학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자리이며, 계절의 흔적을 감내하는 몸이다. 학은 그 위에 앉아 있다가, 필요할 때 날아오를 줄 안다. 서로의 역할은 분명하지만 위계는 없다. 견디는 자와 건너는 자가 균형을 이룬다. 이 그림의 장수는 숫자가 아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같이 사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송학도는 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의 장면은 축복의 선언이 아니라 생활의 합의처럼 읽힌다. 절제된 색, 깊어진 호흡 채색은 낮고 단정하다. 청록과 백색, 갈색의 조율은 눈에 띄기보다 눈을 쉬게 한다. 깃털의 결, 솔잎의 밀도는
K-민화 강경희 기자 | 2026년 병오년 새해 첫날인 1월 1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 2층 전관에서 열린 2026 세화歲畫 특별전 「어서 오세요, 벽사초복僻邪招福·服」이 내외 귀빈과 관람객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K-민화와 K-민화한복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세화전으로, 전통 회화가 ‘보는 예술’을 넘어 ‘입고 걷는 예술’로 확장되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조낭경 대표가 이끄는 고은자락의 K-민화한복이 있었다. 조 대표는 민화 속 호랑이, 사자, 길상문, 복福의 상징들을 한복의 선과 색으로 재해석해 무대 위에 올렸다. 전시장은 K-민화 작품 전시를 중심으로 ▲k-민화한복 패션쇼 ▲세화 특별전 시상식 ▲대한민국 명인 인증서 수여 ▲‘한국을 빛낸 예술인 100인 대상’ 시상 ▲문화 퍼포먼스로 이어지며, K-민화 종합 문화축제로 구성됐다. 이는 민화를 단순한 전통 회화 장르가 아닌, 패션·라이프스타일·공공외교를 아우르는 살아 있는 문화 언어로 확장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조낭경 대표는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는 액운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세화의 의미를 한복에 담아 삶의 현장으로 끌어낸 자리”라며 “
K-민화 이성준 기자 | 호랑이는 언제나 강하다. 그러나 박현정 작가의 '송죽설호'가 보여주는 강함은 포효의 크기가 아니라 버티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눈발이 흩날리는 설경 속, 송죽 사이를 가르며 내려오는 이 설호雪虎는 위협보다 결기를 먼저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겨울은 배경이 아니다. 겨울은 시험이며, 설호는 그 시험을 통과하는 존재다. 눈은 온 화면을 덮되 시야를 가리지 않고, 소나무와 대나무는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박현정 작가는 이 자연의 질서를 통해 호랑이의 성정性情을 규정한다. 강함은 돌진이 아니라 지속이며, 용기는 소란이 아니라 침착이라는 선언이다. 호랑이의 발걸음은 낮고 무겁다. 한 발 한 발이 산의 결을 읽듯 이어진다. 이는 민화의 전통적 호랑이가 가진 해학이나 과장의 영역을 넘어, 현실의 무게를 감내하는 존재로서의 호랑이다. 눈을 밟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묘사는 단순한 사실주의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를 화면에 심어 넣은 결과다. 색채의 선택 또한 절제되어 있다. 설경의 백색은 과도하게 번지지 않고, 호피의 선은 또렷하되 과장되지 않는다. 송죽의 녹은 차갑게 살아 있고, 바위의 회색은 계절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기술의 과시가
K-민화 이존영 기자 | 봉황은 함부로 날지 않는다. 태평성대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면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봉황은 k-민화에서 ‘권력’보다 먼저 품격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김민주 작가의 '봉황도'는 이 오래된 상징을 오늘의 언어로 조용히 번역해낸 작품이다. 이 봉황은 위엄으로 군림하지 않는다. 날개를 크게 펼치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대신 바위 위에 내려앉아 주변의 생명을 바라본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는 가운데 봉황은 중심에 있으되 중심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그림의 첫 번째 미덕이다. 작품의 구성은 위로 치솟기보다 아래로 뿌리내린 질서를 따른다. 바위는 흔들림 없는 토대처럼 봉황을 받치고, 그 위에 피어난 모란과 매화는 계절과 덕목을 동시에 상징한다. 모란의 풍요와 매화의 절개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봉황은 화려함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절제된 풍요 위에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황의 깃털은 특히 인상적이다. 녹청과 주홍, 백색과 금빛이 겹겹이 쌓였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이는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오랜 수행 끝에 도달한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고요한 질서가 다가온다. 요란한 기교도, 감정을 앞세운 서사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오래된 약속처럼 견고한 균형이다.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왕의 병풍’이라는 익숙한 틀을 빌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누가 중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일월오봉도는 본래 권력의 상징이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와 물이 질서는 왕을 우주의 중심에 놓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 그러나 조경선의 화면에서 왕은 사라진다. 대신 남는 것은 질서 그 자체다. 위와 아래가 뒤집히고, 현실과 반영이 맞물리며, 하늘과 땅은 서로를 비춘다. 중심은 비어 있고, 그 자리에 우주의 리듬이 놓인다. 특히 수면水面을 가로지르는 반복의 파동은 인상적이다. 겹겹이 쌓인 물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처럼 읽힌다. 흐르되 무너지지 않고, 반복되되 지루하지 않다. 이는 민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과 질서를 통한 안정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자연은 요동치지만, 그 요동 안에는 언제나 법칙이 있다. 색의 선택 또한 치밀하다. 짙은 남색의 하늘, 절제된 황토와 녹청, 그리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혜원 작가의 '수복 백물도'는 화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기물과 상징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아온 ‘복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이 그림은 부귀를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직하게 펼쳐 보인다. 백물도는 말 그대로 수많은 물건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시장의 진열품이 아니다. 책과 문방구는 배움의 시간을, 악기와 도구는 익힘의 세월을, 그릇과 생활 기물은 살아낸 하루하루를 상징한다. 이혜원 작가의 백물도는 물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흔적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특히 ‘수복壽福’이라는 두 글자가 화면 전체를 감싸듯 배치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장수와 복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복만 많아도 균형을 잃는다. 이 작품은 민화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진리를 다시 꺼내 놓는다. 복은 오래 쌓여야 깊어지고, 장수는 바르게 살아야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구조적으로 보아도 이 작품은 흥미롭다. 단단한 탁자 위에 올려진 백물은 무너지지 않는다.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는 정신의 상징이, 아래에는 생활의 토대가 놓인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민화적 세계관의 정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에는 호랑이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이 작품 앞에서 호랑이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호랑이보다 더 호랑이 같은 기운이다. 이경아의 '호피도'는 형상을 지운 자리에서 본질만을 남긴 k-민화다. 호피虎皮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다. 조선의 민화에서 호피는 권위와 벽사僻邪,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생존의 상징이었다. 왕의 좌정 아래 깔리던 호피, 장수의 용맹을 대신하던 호피는 ‘사냥된 짐승의 껍질’이 아니라, 제어된 힘의 표식이었다. 이경아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호랑이의 눈, 이빨, 발톱을 모두 지우고도, 힘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작품 중앙을 따라 흐르는 대칭의 축은 인상적이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점과 얼룩들은 실은 치밀한 리듬을 이루며, 중심을 기준으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자연의 무늬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질서를 해석한 결과다. 야성은 혼돈이 아니라, 스스로의 법칙을 지닌 상태임을 이 작품은 말한다. 색감 또한 절묘하다. 황토에 가까운 바탕 위에 얹힌 검갈색의 무늬는 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오래된 시간의 결을 닮았다. 이는 ‘날카로운 포효’가 아니라,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