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해인의 詩 ‘바닷가에서’는 바다를 풍경으로 삼은 시가 아니다. 이 시에서 바다는 신의 음성과 인간의 울음이 동시에 머무는 자리, 그리고 내려놓음과 끌어안음이 교차하는 영적 공간이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자연의 소음이 아니라, 통곡과 위로가 번갈아 울리는 존재의 언어다.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리듬을 수평과 깊이로 번역한다. 화면 하단에 번져가는 푸른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장을 받아내는 감정의 그릇이다. 먹으로 적힌 시어들은 파도처럼 반복되며 밀려왔다가, 어느 순간 숨을 고르듯 여백 속으로 물러난다. 이 여백은 말하지 않음의 공간이자, 기도가 멈추는 자리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글씨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파도가 모래 위에 말을 “엎질러놓듯”, 문장들은 화면 위에 흘러놓아진다. K-그라피의 획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그 거침 속에서 오히려 시의 진실성이 살아난다. 밀물과 썰물처럼, 이 작품은 붙잡으라 말하는 순간과 놓아버리라 말하는 순간을 함께 품는다. 결국 조미주 작가의 K-그라피는 바다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바다 앞에 선 한 인간의 마음 상태를 그린다. 이 작품은 묻는다. 우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길」은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태도에 가깝다. 이 시에서 길은 이미 놓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한 발을 내딛는 순간에 비로소 생성되는 과정이다. “길을 잃으면 길이 차차 안 온다”는 문장은 실패의 선언이 아니라, 멈춤에 대한 경고다. 걷지 않는 한, 길은 오지 않는다. 부선영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메시지를 구조와 색의 대비로 시각화한다. 작품 중앙에 노랑색으로 쓰인 ‘길’은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축이자 심장이다. 검은 먹의 문장들이 불안과 망설임의 흐름처럼 주변을 에워싸고 있을 때, 노랑의 ‘길’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내면의 표지판처럼 선명히 서 있다. K-그라피 특유의 거침없는 필획은 망설임 없는 걸음을 닮았다. 번지거나 삐뚤어진 획조차 실패가 아니라 흔적으로 남으며, 그것이 곧 ‘걸어왔음’의 증거가 된다. 이 작품은 말한다. 길은 정답이 아니라 선택이며, 완성이 아니라 지속이라고. 결국 길은 지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몸 안에서 시작된다고... 작가노트 | 부선영 명인 이 작품을 쓰며 ‘길’을 목적지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길은 늘 불안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박노해의 詩 「숨비소리」는 버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들어가야 할 곳을 정확히 가리킨다. “휘, 숨소리 토하며 반드시 살아나와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지침이다. 삶의 표면에서가 아니라, 인생의 심장부까지 최대한 깊이 들어가라는 요구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숨을 찾아 나와야 한다는 명령이다. 백경애 작가의 K-그라피는 이 詩의 긴장을 몸의 곡선과 호흡의 흔적으로 번역한다. 작품 하단에서 상단으로 치솟는 형상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인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시 수면을 향해 몸을 비틀어 올리는 생명의 궤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먹의 농담은 폐 깊숙이 밀려드는 물의 압력을 닮았으며, 번져가는 선들은 숨을 되찾기까지의 흔들림과 긴박한 리듬을 닮았다. 이 작품 속에서 잠수부는 단순히 가라앉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가장 깊은 곳으로 몸을 맡기며, 동시에 반드시 다시 떠오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인간의 상징으로 서 있다. 글씨는 단정하지 않다. 호흡이 고른 순간이 아니라,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순간에 쓰였다. K-그라피는 여기서 미학이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 된다. 설명을 지운 자리에는 호흡만 남고, 장식 대신 체온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류시화의 이 문장은 위로를 넘어 존재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우리는 늘 더 나아져야만, 더 채워져야만 빛날 수 있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시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달을 보라고. 늘 둥글지 않아도, 매 순간 제 몫의 빛을 내는 달을... 조희진 작가의 이 작품은 깊은 밤이다. 별처럼 흩뿌려진 여백과 푸른 어둠 위에 떠 있는 반달은 결핍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진행 중인 존재의 얼굴이다.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이미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달은 말없이 증명한다. 굵고 단호한 획으로 쓰인 ‘달’의 형상은 흔들림 없이 화면의 중심을 잡고, 그 주변의 잔잔한 번짐은 시간의 숨결을 남긴다. 이 작품에서 ‘너’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우리 모두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안에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이야말로 이 시가 가리키는 빛이다. 조희진 작가는 K-그라피의 언어로 옮겨진 이 시는 읽히기보다 보이며, 이해되기보다 체감된다. 달은 설명되지 않고, 대신 바라보게 만든다. 그 바라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나는 빛나고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김용택의 詩는 늘 자연에서 시작해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다시 설레는 봄날에’, 또한 그렇다. 이 시에서 봄은 계절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며, 설렘은 젊음이 아니라 다시 믿어보려는 용기다. 장세진 작가의 K-그라피는 이 시의 정서를 ‘길’로 번역한다. 작품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곡선의 길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없이 포기했던 마음을 다시 건너는 내면의 동선이다. 논두렁처럼 굽이진 길, 아직 차가운 물빛을 품은 강, 그리고 끝내 피어나는 봄꽃이 모든 요소는 삶이 늘 곧게만 흐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말한다. 먹으로 쓴 글씨는 서두르지 않는다. 획은 단정하지만 완결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시 설레는 봄날에”라는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초대다. 이미 설레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설레도 괜찮아진 마음의 상태를 조용히 내어준다. 그래서 이 작품의 봄은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한 번 더 삶을 믿어보기로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에 가깝다. K-그라피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글과 그림의 역할을 나누지 않는다. 글씨는 풍경이 되고, 풍경은 시의 행간이 된다. 읽는 이는 문장을 따라가다 길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겨울이라고 아무 꽃도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 정태운의 시 「그러기에」는 단호하다. 계절을 이유로, 나이를 이유로, 절망을 이유로 삶을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김경자 작가의 ’동백‘은 이 시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가 말하려는 진실을 한 송이 꽃으로 증언한다. 작품 속에 동백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절제된 붉음으로 겨울의 공기를 견딘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잎은 푸르고, 꽃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 옆에 머문 작은 새 한 마리는 생의 온기를 상징한다. 떠나지 않고 머문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희망임을 말하듯... 김경자 작가의 붓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먹과 채색은 조용히 겹쳐지고, 여백은 말보다 깊다. 이 여백 속에서 동백은 외친다. “나는 피어야 할 때가 아니라, 피어야 할 이유로 핀다.” 시의 중반부, “절망이라고 삶의 의지마저 꺾지 마라 /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중심 사상이다. 동백은 희망을 ‘기다리는’ 꽃이 아니다. 희망을 직접 증명하는 존재다. 그래서 이 그림의 겨울은 차갑지만, 차갑기만 하지는 않다. 마지막 연, “신은 우리의 마지막 날을 알려주지 않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떠나는 것은 언제나 몸이지만, 남는 것은 마음이다. 오애순의 시 「두고가는 마음에게」는 이 단순한 진실을 가장 조용한 언어로 건넨다. 이윤정 작가는 그 조용함을 더 낮은 음역으로 끌어내린다. 화면의 푸른 밤은 울음을 삼킨 하늘 같고, 반달은 끝내 다 말하지 못한 마음의 표정 같다. 별점처럼 흩어진 여백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좌표다. 굵은 획으로 세운 제목의 수직은 이별의 단호함을 닮았고, 그 옆에 흐르듯 이어지는 문장은 남겨진 마음의 진동을 닮았다. “이제는 길에 없어도 당신 계신 줄 압니다.”라는 문장은 작별의 문장인 동시에 신뢰의 선언이다. 떠나보내는 법을 배웠기에, 남겨두는 법도 알게 된 마음이 작품은 그 성숙을 보여준다. 이윤정 작가의 K-그라피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먹의 농담은 절제되어 있고, 속도는 늦다. 느린 속도는 애도의 품격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위로는 즉각적이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아까운 당신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화면 아래에 내려앉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이별은 패배가 아니라 감사의 형식일 수 있음을. K-그라피 칼럼 | 남겨진 마음을 쓰는 법 K-그라피는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흘러가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단정한 진술이다. 소예 김나은 작가의 이 작품은 조언이나 교훈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작품을 펼쳐 보인다. 검은 먹은 한 번에 멈추지 않는다. 굵고 무거운 획은 잠시 머물다 흐르고, 번짐은 의도하지 않은 흔적으로 남아 또 다른 시간의 결을 만든다. 화면 위에 점처럼 흩어진 먹의 얼룩은 멈춤이 아니라 속도를 늦춘 흐름이다. 인생이 늘 직선으로만 나아가지 않듯, 이 작품의 획 또한 곧고 단정하지 않다. 비틀리고 흔들리며, 때로는 낮게 가라앉는다. 상단의 형상은 인간의 자세를 연상시킨다. 숙이거나, 짚거나, 건너는 몸짓. 그것은 도착의 순간이 아니라 건너가는 과정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그 장면을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화면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곡선의 획을 통해 말한다. 삶은 한 지점에서 완성되지 않으며, 의미는 도착이 아니라 흘러가는 태도에서 생겨난다고... K-그라피의 언어로 보자면, 이 작품에서 글씨는 문장을 전달하는 기능을 이미 넘어섰다. 획은 말이 되기 이전의 호흡이고, 먹은 감정이 아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 글씨 앞에 서면, 우리는 먼저 ‘읽지’ 않는다. 대신 느낀다. 글자는 의미로 다가오기 전에, 기류氣流처럼 몸에 닿는다. 김태곤 작가의 ‘바람의 자유’는 문장을 쓰지 않는다. 그는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먹은 획이 아니라, 숨의 방향으로 번지고 색은 칠해진 것이 아니라 스며든다. 붉은 바탕은 고요하지 않다. 마치 오래된 시간 속에 쌓인 기억처럼, 번짐과 얼룩은 질서 없이 겹쳐 있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푸른 획, 그 획은 결코 단정하지 않다. 흔들리고, 갈라지고, 멈칫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정함이 이 작품을 자유롭게 만든다. “꽃잎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바람 속에 먼 바다도 파도소리가 들린다.” - 지안스님 詩 중에서 시의 문장은 작품 아래에 조용히 놓여 있지만, 실은 이미 화면 전체에 흩어져 있다. 글씨는 꽃잎이 되고, 꽃잎은 나비가 되며, 나비는 바람을 따라 사라진다. 이 작품에서 ‘바람’은 자연이 아니다. 집착을 내려놓은 상태,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 마음, 머무르지 않으려는 의지다. 그래서 이 글씨는 말한다. 자유란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붙잡지 않는 것이라고. 작가 노트 | 김태곤 명인 나는 글자를 쓰기보
K-그라피 이성준 기자 | 이 작품은 말하지 않음의 윤리를 묻는다. 윤미경 작가의 K-그라피는 ‘클레리키건’의 문장으로, “아이들은 침묵을 행해야 할 순간에 말해버려서 소중한 것을 잃는다”를 훈계가 아닌 형상으로 바꾼다. 작품 중앙을 가르는 굵고 긴 획은 칼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계선에 가깝다. 말과 침묵, 드러냄과 지킴 사이에 놓인 선. 그 아래 놓인 글자들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며, 일정한 거리와 호흡을 유지한다. 이는 ‘말함’이 아니라 멈춤을 연습하게 하는 구조다. 윤미경 작가의 붓은 과감하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획의 시작과 끝은 분명하되, 여백은 넉넉하다. 이 여백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보호막이라는 메시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말은 쉽게 흘러나오지만, 침묵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붓의 무게로 증명한다. K-그라피의 미학은 이 지점에서 성숙해진다. 이 작품은 말의 미학이 아니라 침묵의 태도를 기록한다. 보여주기보다 지키는 쪽을 택하는 용기와 윤미경 작가의 K-그라피는 그 용기를 검은 먹으로 남긴다. 작가 노트 | 윤미경 명인 이 문장을 읽고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에게 더 필